[사진]키다리이엔티·소니 픽쳐스
[사진]키다리이엔티·소니 픽쳐스

추억은 오늘의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청춘은 어떠한 단어라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시기이기에, 과거로부터 건너온 희미한 추억일지라도 오늘의 일상에는 선명하게 남는다. 그 흔적들은 가끔 멈춰선 우리에게 힘찬 응원이 되기도, 때로는 조용한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는 뚜렷한 꿈이 없는 채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고 삼수 생활을 하던 영호(강하늘 분)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며 시작된다.

하지만 영호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사랑은 병원에서 온 몸이 마비된 채로 지내고 있으며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그를 대신해 동생인 소희(천우희 분)가 답장을 보낸다. 그렇게 두 사람을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언젠가 만날 날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제안을 주고받는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두 주인공의 인연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사랑만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우리가 흘러가듯 스쳐보낸, 그때가 아니었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수많은 순간들과 감정들이 흘러넘치는 작품이다.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의미들이 스며들어 있다.

대학을 잘 나온 엘리트 출신의 형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앞길에 대해 고민하는 영호의 모습도, 아픈 언니를 지켜보며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소희의 모습도, 세상에 졌다며 아픈 딸과 사별한 남편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소희와 소연의 어머니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또한 표면적인 주제인 사랑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 깊다. 작품 속에는 운명이라고 여겨지는 두 주인공 이외에도 손만 닿으면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더욱 작품이 흘러가며 '두 주인공은 만나게 됐을까,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질문들은 무색해진다. 결국 우리의 운명이 누구냐를 떠나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 자체가 아름다운 인연이고 추억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서다.

사랑은 어떠한 목표점에 닿아야만, 혹은 종결을 맺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흘러갔을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기에 더욱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진다. 4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