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닮지 않은 세 자매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세자매'는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항상 '미안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그녀는 가장의 역할을 버리고 가끔씩 찾아와서 돈만 가져가는 남편, 엄마에게 서슴없이 욕하고 대들며 반항하는 딸과 지하철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유년시절의 깊은 상처를 안고 꽃집을 하며 살아가는 희숙은 어려운 경제 형편에도 늘 미소로 고통을 지우며 버틴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그 얼굴에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삶이 담겨 있다.

동생들에게도 돈을 빌리고 미안해서 연락도 못하는 그녀는 집에서도, 꽃가게에서도 늘 불을 꺼놓고 지낸다. 힘들고 아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는 걸로 작은 위안을 얻는다. 김선영은 괜찮은 척 하는 그 얼굴에 많은 것을 담았다.

둘째 미연(문소리 분)은 신도시 대형 아파트에서 교수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열렬한 크리스천인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식의 가면을 쓰고 있다. 자신의 상처는 숨긴 채, 남들이 보는 눈만 신경 쓰고 살아간다. 독실한 신자였던 아버지처럼, 자신도 기도로 상처를 씻어내고 기도로 용서받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위안한다. 교회 젊은 여대생과 외도하는 남편에게 조차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그녀로 인해 오히려 남편이 질려서 집을 나간다.

셋째 미옥(장윤주 분)은 날마다 술에 취해 있는 극작가다. 막 나가는 말과 행동,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나이 많은 남편과 의붓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는 되는 것 없는 꼬인 인생을 살고 있다. 뭐든지 술에 취해 해결하려는 골칫덩어리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처럼 너무 다른 세 자매는 '가족'이라는 굴레로 얽혀있다. 둘째 미연은 술에 취해 매일 전화해서 중얼거리는 동생 미옥의 전화를 받아야 하고, 첫째 언니 희숙까지 챙긴다. 서로 맞지 않는 듯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세 사람은 자매라는 이름으로 엮여 유년의 아픔을 공유한다.

이승원 감독은 익숙한듯한 한국의 가족 이야기, 가정폭력과 외도 이야기를 세 자매를 통해 날카롭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강렬했다가 침잠하며 큰 울림을 전한다. 결국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폭력으로 인해 상처 입은 세 자매가 어른이 돼서 또 똑같은 상처를 받고, 아버지에게도 또 남편에게도 사과받지 못하는 모습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첫째 희숙이나 둘째 미연과 달리 감정을 표현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옥은 남편으로부터 존중받고 사랑받는 모습이 인상 깊다.

영화는 오롯이 '세 자매'가 꽉 채운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세 배우는 맞춤 캐릭터로 세 자매를 만들어놨다. 연기력을 논하기도 입 아픈 문소리는 가식이라는 가면을 쓴 완벽주의자 미연 캐릭터로 영화를 끌어나간다. 실제로는 불교 신자라는 문소리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미연 캐릭터를 위해 몇 달 동안 실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보고, 실제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선영에게 기도문 첨삭을 받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연기했다.

김선영은 희숙 그 자체다.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도 항상 괜찮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싶다가도 화를 낼 줄도 몰라서 말갛게 웃어버리는 모습에 저절로 눈물이 고인다. 집을 나가려는 딸을 붙잡고 아프다고 고백하며 손가락으로 딸의 옷자락을 살짝 잡는 모습이나, 마지막 아버지의 생일 잔치에서 폭발하며 오열하는 모습에서 한숨과 감탄이 터져 나온다.

'베테랑' 이후 두 번째 영화로 돌아온 장윤주 역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연기 잘하는' 두 언니 사이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며 골칫덩어리 미옥 역할을 표현해 냈다. 술을 안 마신다는 그녀의 술 취한 연기는 귀엽게 느껴진다. 실제 본인도 세 자매의 막내라는 장윤주는 캐릭터와 완전히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세 자매'는 한국 사회 가족의 틀 안에서 어린 시절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또 서로를 통해 그 상처를 위안받는 자매의 모습을 보여주며 생각할거리를 안긴다. 섬세한 연출과 두 번 세 번 봐도 아깝지 않을 배우들의 명연기 앙상블이 마음을 울린다.

1월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